그 외/그 외....

사랑이 없는 세상...어딜 향해 가고 있나!!

작은별 1004 2013. 8. 9. 00:04

기사를 검색하다 너무나 가슴 저려와서 올립니다.

성경에 마지막때에 사랑이 식어진다고 예언이 되어 있지만

 점점 삭막해져 가네요 ㅠ.ㅠ

우린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요??

조금의 손해없이 나만 잘 살면 되는 세상을 꿈꾸나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기사에 실린 어르신들은 누가 책임을 지나요??

세상에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집단 이기심이 결국 우리 자신을 헤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8월7일 한거레 신문에서 발췌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지난달 26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월곡자원’ 앞에서 고물상 업주인 박재욱(56·왼쪽)씨와

 아내 전연순(55)씨가 손님이 챙겨온 파지와 고물 등을 건네받아 정리하고 있다. 

 

[현장] ‘도심 영업 규제’ 시행…가난한 노인들 어떡하나?
고물상은 대도시가 소비한 욕망들의 배수구다. 더 이상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물건들이 고스란히 고물상으로 모여든다. 도시를 메운 사람들의 욕망이 팽창하면서 고물상도 몇 년 새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고물상 업주들의 모임인 ‘전국재활용인 비상대책위원회’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 전국에 7만여명의 ‘고물쟁이’ 소상인들이 뛰고 있으며 200만여명이 자원 재활용 산업에 생계를 의존한다.

그 고물상들에게 정부는 이제 도시를 떠나라 한다. 고물상 입지 규제를 강화한 폐기물관리법이 지난달 24일부터 시행됐다. 도시의 미관을 더는 해치지 말라는 것이다. 고물쟁이들은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배운 것이 없고 나날이 먹고 사는 것이 바빠서” 소식을 몰랐다는 이도 있다. 떠나려 해도 당장 갈 곳이 없다. 날마다 고물을 팔러 오는 노인들의 끼니도 걱정이다. 6일 전국재활용인 비대위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친 이유다. 지난달 26~30일 서울 강북지역의 고물상을 돌며, 고물 없이 살 수 없는 이들을 만났다.

■ “고샅고샅 치웠더니, 도시 미관 해친다고?” ‘넝마주이’라 수군거려도 하는 수 없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고물이 밥 먹여주는 인생이라지만, 그인들 처음부터 윤나는 새 것 대신 낡아빠진 고물을 아낀 것은 아니다. “망하고 망한 끝에 시작한 게 고물상 ‘하바리’ 인생이죠, 뭐.” 30일 낮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광양자원’의 왕경애(53) 사장이 부지런히 파지 가운데서 ‘먹발’(흰 종이를 일컫는 고물상 업계의 은어)을 골라내며 말했다. 왕씨의 목소리에서 오래 비바람을 견뎌낸 쇳소리가 났다.

10여년 전의 일이다. 아이엠에프(IMF) 이후 줄곧 내리막이던 남편의 액세서리 회사가 끝내 문을 닫았다. 중학생 남매를 두고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왕씨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아이들을 벌어 먹이기 위해 식당일부터 노점상까지 안해본 일이 없다. 동묘 앞에 좌판을 펼치고 잡동사니를 팔던 시절, 누군가 귀엣말로 “고물이 돈 된다”고 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고물을 줍기 위해 연기가 풀풀 나는 1t짜리 고물 화물차를 사들였다.

새벽 4시면 일어나 밤 12시까지 강남 도심을 쏘다녔다. “똥차 빼라”는 경비원들의 타박에 우는 날도 많았다. “먹고 살기 어려우니 좀 도와주세요.” 반 구걸하다시피 고물을 챙겨오곤 했다. 2년 만에 다 쓰러져가던 고물상을 ‘할부’로 인수해 소상의 길에 들어섰다. 파지 등을 들고 왕씨를 찾아오는 고정 ‘고객’이 7명 남짓에서 150여명으로 늘었다.

지난달 왕씨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법이 바뀌어 주거·상업지역에 자리잡은 고물상들은 터를 옮겨야 한다”고 이웃 업주가 이야기했다. 개정된 ‘폐기물관리법’은 부지 규모 2000㎡(특별시·광역시 1000㎡)가 넘는 고물상들은 7월24일부터 의무적으로 폐기물 처리 신고를 하도록 했다. 새로운 규제도 생겼다. 주거지나 상업지 등 다른 지목에 해당하지 않는 ‘잡종지’에서만 고물상을 할 수 있다.


폐기물 처리 신고해야 하고 주거

 상업지역엔 안된단다

 법 어길땐 벌금이 1천만원


법이 전면 시행된 24일을 전후해 자치단체들은 지역 내 고물상을 단속하거나 엄단할 계획을 밝히는 등 압박하고 있다. 서울시·울산시·전주 덕진구·인천 계양구 등은 이미 “그동안 고물상이 환경 훼손, 도시 미관 저해 등의 이유로 지역 주민과 마찰이 발생해도 적절한 조처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불법 영업하는 고물상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해 위법사항이 발생할 경우 엄단할 계획”이라고 고물상들에 공문을 보냈다.

환경부는 “국토해양부, 지방자치단체, 업계와 협의회를 구성해 해소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작 행정제재의 주체인 자치단체와 손발은 안 맞는 눈치다. 충남 천안 등지에선 이미 공무원들이 고물상 단속에 나서고 있다. 폐기물법을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고물상 부지가 495㎡(150평)여서 신고 의무는 없지만, 지목이 ‘전답’인 까닭에 왕씨도 울상이다. “번 돈이 벌금으로 다 가게 생겼는데, 여태 법에 대해 몰랐으니 한숨만 나오는 거죠. 고물상 덕에 동네 깨끗한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는 건지. 이것도 사업이라고 벌려놓고 있는데….” 왕씨는 1kg의 파지를 팔아 10원을 남긴다. 1000만원의 벌금을 대려면 1000t의 파지를 모아야 할 테다.

 

■ 가난한 노인들은 어디로? ‘미관을 해치니 도심에서 나가라’는 경고를 듣는 국민은 많지 않다. 오래 전에 달동네가 그렇게 깎여나갔고 봉제공장, 쓰레기 매립장, 노점상이 쫓겨 나갔다. 도시 미관을 정비하는 일을 돕는다고 믿어온 ‘월곡자원’의 박재욱(56) 사장은 억울하다. “어차피 서울시내 재개발하면 고물상은 저절로 다 없어지는데 앞으로 생기는 걸 규제하면 되지, 있는 걸 하루 아침에 어떻게 하라는 건지.”

 

 

망하고 망한 끝에 시작한 일
손가락 굽고 살 쪽쪽 빠지며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왔는데…

전기 기술자였던 박씨는 7년 전 아내 전연순(55)씨와 함께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고물상을 꾸렸다. 두 부부가 “인건비 따먹는다” 생각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 겨우 한달 300만원 남짓 번다. 이웃들은 “인부 5명 몫을 부부가 둘이서 해낸다”고 입을 모은다. 고물상을 맡은 지 3개월 만에 아내 전씨는 15kg이 빠지고 열 손가락이 곱아들었지만 불평이 없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 올라와 공장 일부터 파출부 일까지 안해본 일이 없다.

전씨는 가난을 잘 안다. 가난이 고된 것인지 알기에, 굽은 몸으로 고물상을 찾는 노인들을 부모처럼 보살핀다. 고물상의 명운을 두고도 ‘고객’의 앞날이 더 걱정이다. “우리 사는 것도 사는 거지만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걱정이에요. 30명 정도가 고정적으로 오는데 그 어르신들은 어떻게 살라구.”

하월곡동 언저리에서 전씨는 가난한 노인들의 복지사나 다름 없다. 노인들의 없는 살림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챙기는 이는 ‘계란 할머니’(87)다. 하루 두 차례 월곡자원을 찾는 계란 할머니는 늘 지쳐 있다. 말없이 파지를 던져두고 고물상 구석에서 지친 몸을 눅인다. 팔아야 할 계란 몇 판과 파지를 실은 유모차에 겨우 몸을 걸치고 다니지만 바닥으로 굽은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파지줍는 노인들은 또 어떡하나
고물상보다 더 걱정되는 어르신들
정녕 도시는 우리를 내쫓으려나

52년 동안 월곡동 인근에서 계란을 팔아온 할머니는 여전히 계란판을 놓을 수 없다. 외국에 돈 벌러간 큰 아들은 소식이 끊겼다. 서울 사는 아들은 이따금 할머니를 찾아 막걸리와 족발을 사드리고 떠난다. 10여년 전부터 ‘부업’으로 파지까지 줍기 시작했다. 혼자 지내는 계란 할머니는 대개 막걸리나, 고물상에서 얻어먹는 인스턴트 커피로 끼니를 때운다. 그렇게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마시고 가는 커피가 이틀이면 300잔이다.

조순례(77) 할머니의 처지는 그 중 낫다. “얼굴이 화닥화닥혀. 아주 그냥 목구멍에서 쓴내가 나.” 낮 최고기온 31도를 오르내리던 26일 조 할머니가 19kg의 파지를 손수레에 싣고 고물상을 찾았다. “뜨거워서 안 다니려고 결심했는데 옆집에서 책이 나와서 얼른 갖고 왔다”고 말하는 표정이 밝았다. 고물상을 찾는 다른 독거노인들과 달리 조 할머니는 딸과 함께 산다. 맞벌이로 아이 키우기도 고된 딸네 살림에 부담 주지 않으려 거리로 나섰다. 한번 오갈 때 2000~3000원씩 챙겨 고혈압 약값을 번다.

삶의 언저리에서 또다시 밀려나는 일에 김명수(80) 할아버지는 울화통을 터뜨렸다. 김 할아버지는 지금은 남이 버린 과일 상자를 줍지만 2004년까진 반지르르한 과일을 30년 넘게 팔았다. 김 할아버지가 장사를 하던 종암동 재래시장은 재개발로 사라졌다. 입에 풀칠 하려고 거리로 나섰다. “결국엔 돌다돌다, 마지막엔 고물이야. 이것마저 관두라 그래?” 반백년 이고 진 짐 때문에 한쪽으로 굽은 몸을 뒤틀며 푸념하듯 김 할아버지가 말했다.

빈민활동가인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 집행위원장은 “도시화 과정에서 빈곤 계층은 미관과 위생의 미명으로 배제되고 추방돼 왔다. 서울은 개발의 임계점에 다다른 도시이므로 복지체계 밖의 빈곤 계층을 무작정 내쫓기보다 기존 도시 생태계를 복원하는 차원에서 마을의 거점 구실을 하는 고물상을 보존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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